> 직지와 금속활자 > 직지의 판본
직지는 다음과 같이 금속활자본, 목판본, 필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금속활자본
 
금속활자본 「직지」는 1377년(고려 우왕 3) 7월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하였으며, 본래 상·하 2권이었으나, 현재 상권은 전해지지 않고 첫째 장이 떨어져나가고 없는 하권 1책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Manuscrit Orianteaux)에 소장되어 있다.

「직지」 하권의 판식(版式)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계선이 있다. 반엽(半葉)의 행자수(行字數)는 11행 18∼20자이며, 주문(註文)은 쌍행이다. 판심에 어미는 없고, 판심제는 「직지(直指)」이며, 권말제(卷末題)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직지 금속활자본

책의 크기는 24.6 17.0cm이며, 다섯 구멍을 뚫고 붉은 실로 꿰맨 선장본(線裝本)이다. 종이는 전통한지에 인쇄되었으며, 전체가 배접되어 있다. 표지는 능화판 문양과 종이로 보아 조선 후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377년이라는 연대와 함께 주조된 활자로 인쇄되었다고 알려진 가장 오래된 한국 인쇄본이다"라고 모리스 꾸랑의 기록이 있다.

금속활자본 「직지」에 나타나는 금속활자본으로서의 특징
본문의 항렬(行列)이 바르지 않고 비뚤어져 있으며, 그 중에는 글자가 옆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경우도 있다.
인출(印出)된 자면(字面)에서 나타나는 묵색(墨色)의 농도 차이가 심하고 반점(斑點)이 나타나있는 경우가 많다.
일(日)이나 일(一) 등의 글자는 아예 거꾸로 식자된 경우도 있으며, 어떤 글자는 인쇄 도중에 탈락된 경우도 있다.
동일 면에서 동일한 활자의 같은 글자모양이 보이지 않으나, 동일한 활자가 다른 장에서는 사용되고 있다.
글자의 획에 너덜이와 티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목판본
직지 목판본
목판본 「직지」는 1378년(고려 우왕 4) 6월 여주 취암사에서 법린의 주도로 간행하였으며,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 영광 불갑사에 소장되어 있다.

장서각 소장본은 전래되는 목판본 중에서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국립중앙도서관과 영광 불갑사 소장본은 서문이 없는 상태이다.

판식은 사주단변이고  반광(半匡)은 16.7 12.4cm이며, 계선이 있다. 반엽(半葉)의 행자수는 11행 20∼21자이다 .
판심의 어미는 상하향흑어미(上下向黑魚尾)이며,  판심제(版心題)는 「심요(心要)」이다. 책의 크기는 3본이 서로 다르나 장서각 소장본은 21.4 15.7cm이며, 2권 1책의  선장본이다.

책의 머리부분에는 목차나 수록된 조사들에 대한 어떠한 표시도 없이 이색과  성사달의 서문과 상·하권의 본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백운화상이 쓴 발문이 수록되어 있고, 그 다음 간행년월(1378년 6월), 글씨를 쓴 사람(천선), 글씨를 새긴 사람(종탁, 참여, 신명),  모연(법린, 자명, 혜전), 조연문인(묘덕, 묘성, 영조, 성공, 영평군부인 윤씨, 북원군부인 원씨, 구성군부인 이씨, 정순대부판통예문사 김계생), 간행장소(여주 취암사) 등이 기록되어 있다.



필사본
「직지」의 필사본은 현재 흥덕사본과 취암사본이 각각 1종씩 전하고 있다.

금속활자본의 필사본은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 하권의 내용을 필사한 책이다. 판식(版式)은 사주단변이고,  반광(半匡)은 21.5 13.7cm이며, 계선(界線)은 없다. 반엽(半葉)의 행자수는 9행 18∼19자이다.

이 책의 끝에 1377년에 흥덕사에서 인쇄한 기록까지 필사하였으며, 1613년(광해군 5)에 송노엄이 필사하였다. 따라서 흥덕사본 「직지」가 조선시대에도 유통되어 읽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판본의 필사본은 취암사에서 간행된 「직지」를 필사한 것으로, 광곽이 없으며,  반엽의 행자수는 12행 25자이다. 책의 크기는 24.0 17.4cm이다. 장서각 소장의 목판본과 같이 이색과  성사달의 서문이 있고 상권과 하권의 본문내용이 모두 필사되어 있다.

그러나 목판본에 나타나는 백운화상의 글은 없고 대신 「복주현사대사상당(福州玄沙大師上堂)」 4장이 추가되어 있다. 이 필사본의 필사시기는 조선후기로 추정된다.